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전파하였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창1:1, 엡1:22, 롬8:32, 롬15:4, 고전3:21-22, 고전10:11)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수많은 정의를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첫 단어에 이미 나온다.
바로 베레쉬트이다. 베레시트를 ‘태초에’라는 번역되어 있지만 이 베레쉬트의 어근은 ‘머리’이다.
성전안에 머리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베레쉬트인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성전이 베레쉬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전이 된 교회이다(고전3:16).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진 나가 베레쉬트이다. 그것이 곧 구원이기도 하다.
그것을 하나님과 하나되었다라고도 한다. 그렇게 되어지면 드디어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때의 다스림은 세상 왕처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이렇듯 성경의 구원은 결코 조직신학의 철학적 용어가 아니다.
구원의 그림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제시된다. 그런데 결코 칭의니 성화니 이런 추상적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풀어 설명한 텍스트 일 뿐이다. 성경은 칭의라는 말대신에 오히려 자연을 이용하여
구원을 설명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실 때 무엇으로 했는가?
마13장의 대부분 비유는 씨로 설명하셨다. 그 씨를 가진 자가 베레쉬트이다.
이것이 창1:1의 첫 단어에 이미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씨는 베레쉬트이다.
이 베레쉬트가 씨가 되어 장성한 나무가 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다(마13:32)
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고전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의 근본적인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다. 구약의 모든 사건을 예수께서 완성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사도들이다. 그런데
그 기록의 목적은 바로 ‘구원이 내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안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밖의 하나님을 찾게 된다.
내가 진리를 증거할 때 성경은 살아 움직인다.
내가 진리의 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는 내 말이 거짓증거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거짓 증거가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거짓으로 증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진리로 말할 수 있을 때는
구약에 있는 모든 사람이 생생히 진리를 증거하는 존재로 일어난다.
성경이 지금 살아 숨쉬어 나팔을 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나를 고소하는 ‘고소자’ 즉 사탄이 되어버린다.
히11: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브라함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러나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약속은 언제인가?
바로 ‘그 날’이다. ‘그 날’은 ‘마지막 날’을 뜻한다. 아브라함은 진리를 깨닫고 ‘그 날’을 멀리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을 산다. 바로 성령의 때를 말한다. 40절에 놀라운 말씀이 등장한다.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믿음의 조상들이 온전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마지막 날’을 살기 때문이다. 믿음의 조상들은 그 마지막 날을 바라보고
자기 시대에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마지막 날’은 예수께서 온전히 진리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진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때를 말한다. 그래서 마지막 날을 사는 우리가 사실은
아브라함의 때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이 종말을 사는 우리가 진리를 말하지 못하면 진리의 아브라함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진리의 아브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투사된 아브라함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최종 완성 포인트는 나이다. 기존 조직신학은 믿기만하면 천국을 간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그림 언어는 ‘그날’에는 ‘그리스도와 하나된 나’에 대해 그리고 있다.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믿기만 되어질 일이 아니고 완성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모든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나에게서, 내 안에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할 일이다. 내가 최종 완성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