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경에서 자살을 극복한 사례
1) 엘리야 :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왕상17:1),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종교대결을 하여 이기고
바알 선지자들이 모두 죽였다(왕상18:20-40). 이런 연유로 이세벨이 죽이려함을 알고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으나 고통스러워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다(왕상19:1-4).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의 도움으로 살아나서(왕상19:7,8)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였다(왕상19:9-21).
2) 욥 :
욥은 의인으로 큰 재산가요 자녀가 많은 중에도 여호와를 경외하였다(욥1:1).
여호와가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하지 말고 무엇이든 시험 해 보라 하여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자신의 몸에는 창질이 나고 세 친구로부터 여러 가지 유혹을 받았고
(욥1:8-22,4:1,8:1,11:1,7:4-16,42:6), 심지어 아내로부터 자살을 권유받았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욥2:9,10). 그러므로 여호와가 전보다 배의 축복을 주셨다
(욥42:12-15). 140세를 살며 자손 4대를 보고 별세하였다(욥42:16).
욥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낙심하지 않고
유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로 받고. 끝까지 인내함이다(약5:11)
3) 간수 :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두고 지키던 간수가(행16:23-26)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 하였다(행16:27,28).
바울이 만류하여 도망하지 않았음을 알리자 구원을 청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행16:28-34).
5. 사람의 생명과 관련한 성경 말씀
1)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소유로(창1:27,5:1;민16:22) 피조물인 사람이 파괴할 수 없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
2)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이다(출20:13;신5:17).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마19:18;막10:19;눅18:20).
3) 목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막8:36,8: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4) 사망은 죄이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6).
* 목숨을 버려도 죄가 아닌 경우가 있다.
(1) 하나님의 일로 순교하는 경우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4).
(2) 남을 위하여 순직하는 경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6. 성도가 자살을 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
1) 하나님께서 살인을 금하시기 때문이다(출20:13;삼하12:14;요일3:15).
2)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1:26,27,9:6)
3)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창2:7;용33:4;시21:4,36:9;행17:15)
4)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신32:39;삼상2:6,7;욥1:21;시68:20).
5) 그리스도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행20:28;고전6:19,20;엡5:29,30;벧전2:9).
6) 복음이 훼손되기 때문이다(요3:16,10:10).
7)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창1:28;마18:19-29;갈2:20).
8) 성도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롬6:13).
9) 하나님께로서 난 자(성도)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요일5:4).
10) 성도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롬6:13).
11) 성도는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이기 때문이다(계14;12),
7. 자살에 대한 신학적인 관점
1) 자살은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창1:27;고전6:19).
2) 자살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동이다(창9:6;롬8:29;골3:10).
3)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도전하는 행위이다(롬1;16,17).
4)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안에 있는 소망을 거부하는 행동이다(롬5;8;엡2;8;고전13:13).
8. 자살에 대한 신학자들의 인식
1) 락탄티우스(Lactantius, 250-317) -
그리스도인의 생활태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신학자. 저서<신의 교훈>
자살자는 살인자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의적이 아닌 것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떠날 수 있다.
2)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 바울 이후 신학을 가장 잘 집대성한 신학자.
자살은 육체를 더럽히는 행동이 아니라 영혼을 더럽히는 행동이다.
3)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 -
라틴신학을 고전적으로 체계화한 신학자. 저서<신학대전>
자살은
첫째, 자기를 사랑하라는 자연법을 거역하는 행위며,
둘째, 공동선과 단체에 손해를 끼치거나 모독이 될 수 있으며,
셋째, 생명에 대해서 절대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하나님의 권위를(신32:39) 침해하는 행동이다.
9. 자살과 구원의 관계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까지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그것도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자살로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안에 있는 소망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구원을 해주신다는
생각은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거부하는 또 하나의 죄이다.
자살로 구원받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허락으로(삿16:28-29),
주님을 위하여(눅9:24), 친구를 위하여(요15:13),
형제들을 위하여(요일3:16)
목숨을 버리는 것을 성경에서 예외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즉 순교와 순직의 경우이다.
그 외의 이유로 자살한 신자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았다.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취소될 구원조차 없다. 평소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고
제 삼자의 눈에는 구원받은 것처럼 비췰지 몰라도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다.
구원의 여부는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다. 인간의 잣대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지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하여 그 비밀의 일부를 드러내셨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6-21).
주님께서 신자의 최종적인 열매로 판단하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자살한 신자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았다.
10. 기독교인의 자살 예방 대책
1)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잘못된 신앙은 생활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2)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현재의 삶에서 자신의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을 자각하는 것이다
3) 체험 신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체험하면 의심과 회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상담 기회 확대로 정신 건강을 정기적으로 진단하여 보살핀다.
자살 충동에 대한 외부 표출과 동시에
이를 대화의 주제로 선택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치료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또한
주변에서 자살의 징후를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왜 죽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와 함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경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흔히 자살한다고 위협하거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은 주변의 관심을 얻으려 하는 것으로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 10%가 자살하였습니다.
또한 자살은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80% 정도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자살 의도를 밝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주변의 누군가가 자살의사를 모호하게 표출한다고 해서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말고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웃에 관심을 갖고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야말로 자살에 대한 최상의 해답입니다.
교회에서는 무엇보다 자살에 대한 바른 신앙을 심어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