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어려운 때에 금식이라도 해야지. 하던 차에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갑작스럽고, 급하게 금식 일정이 잡혔다.
어디 가서 할까? 망설이며 머릿속으로 여기저기 떠 올려 보지만 마땅치가 않다. 안양 갈멜산 기도원에서 어느 강사님 말씀이, 강화 갈멜 산에도 가 봤는데 항상 은혜받기 딱 좋은 숫자가 모이더라. 하시던 말씀이 머리를 스친다. 아! 맞다. 이번엔 강화로 가 보자. 아침에 강화에 전화하여 숙소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짐정리며 먹 거리도 대충 준비 좀 하고, 가족들에겐 강화 가서 며칠 기도도 하고 쉬다 올께. 통보를 한 후 대충 짐을 챙겨 떠났다. 아! 멀긴 좀 멀다. 1호선 전철로 신길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송정역에 내리니 바로 3000번 버스가 대기라도 한 듯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 멀미가 심한지라 약간의 걱정을 하며, 3000번에 몸을 실었는데 다행히 하나님 보호하사 무사히 강화에 하차.
이미 전 날 저녁부터 금식을 시작 한지라 힘은 좀 들지만 시골 바람, 시골 기온이 기분을 업 시키기에 딱 좋다.
토요일은 오전 예배만 있고, 이미 저녁이니 기운도 없고 잠잘 일 뿐이다. 다인용 방인지라 커다랗고 따끈따끈한 방에 홀로 퍼져 실컷 자고나니 겨우 밤 12시.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창을 열어 늦가을 향기도 한껏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날자가 지나 갈수록 흐르는 시간 따라 몸에 기운은 빠져가고, 어쩔 수 없이 인간인지라 힘이 든다.
그럴 때마다 담당 목사님 간절히 기도로 힘을 북돋아 주시고, 전도사님들도 격려와 함께 같이 기도로 도와 주셨다. 7일이 지나고 8일째, 급기야 예배시간에도 간간히 눕게 되고, 성전 문을 열고 나가면 내 방까지 열 발짝도 안 되련만 그것도 귀찮아 성전 바닥에 너부러졌다.
전도사님이 오셔서 여긴 추우니까 조금 안쪽으로 가 누우세요. 아니요. 귀찮아요. 전도사님. 눈을 감아 버리는데, 다른 전도사님이 이불을 가져다 정성껏 덮어 주셨다.
이건 기도하러 간 건데 완전 아기가 돌봄을 받듯 케어만 받는 느낌. 속으로 엄청 황송한데 말이 되어 나오지도 않는다.
기도원을 꽤 자주 찾는 편인데 강화 갈멜산 기도원은 올 때마다 은혜와 사랑과 감동을 먹고 간다.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으면, 때론 이불로, 때론 담요로 다독여 덮어주고 가시곤 한다. 주방 권사님들도 얼마나 친절하고, 인심도 후하신지, 나는 먹지 못하지만 매일 작은 새끼 고구마들을 쪄서, 누구든지 먹도록 놓아두시기도 하고, 강화쌀의 유명세를 증명하듯 올 때마다 밥맛도 일품이다.
수시로 해 주시는 목사님의 안수 기도와. 전도사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힘입어 드디어 작정한 10일이 오고야 말았다.
언제부터 먹을거냐? 물으시기에 별 생각 없이 저녁부터 했으니 저녁부터 먹어도 되지만 자정은 넘기려구요. 어머나! 웬일이야. 식당 권사님 말씀이 미음이랑 된장국 끓여서 준비해 놓았으니, 12시 넘거든 먹으라신다. 어머 세상에 이런 기도원 처음이예요. 감사합니다.
12시 넘어 가지고 왔는데 미음도 잘 안 넘어간다. 한 서너 번에 거쳐 미음 한 그릇 먹고 나니 눈앞이 환해지는 듯 하고, 내일은 앉아서 예배를 드려도 거뜬할 것 같다. 속으로 참 신기하기도 하고, 참 간사하다 그까짓 미음 한 그릇에 이렇게 기운이 솟나 싶기도 하다.
이제부턴 식당 권사님들 사랑이 나를 향해 넘친다.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럽다. 내가 뭐라구. 죄인이 회개 하러 와서 이런 호강을 해도 되나? 예전에도 한번 장기 금식을 하면서 이렇게 사랑을 받아, 보호식 끝나고 내려간다고 기도원에 머무르는데 그때 담임 목사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금식 한번 하고 호강이 요강에 빠져 내려 올 생각을 안 하네." 후후
기운을 차렸으니 마침 같은 방에 묵게 된 젊은 자매와 산책길에 나섰다. 바닥에 떨어진 갈잎이 푹신하니 느낌이 너무 좋다. 전날 내린 비로 약간 젖어 있어 바스락 소리가 좀 덜하지만 맑고 깨끗한 공기, 바람 없이 따스한 햇볕 산책하기 너무 좋은 날씨.
자매가 말한다. "저 너무너무 행복해요. 멀어서 가족들도 만류하고 많이 망설였는데 안양에서 한 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받은지라. 사모하여 찾아 왔는데. 밥도 너무 맛있고 고기도 듬뿍 주시고, 말씀도 다 나를 위해 주시는 것 같았어요. 오늘 처음 보는 그 목사님까지 마치 우리 집 사정을 다 아시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 산책로도 너-무 맘에 들어요.
저 너무 잘 온 것 같아요." 밝게 웃는 자매의 얼굴을 보며 내 영혼도 환해지는 듯하다.
아! 진짜 조금만 가까우면 매일이라도 가고 싶은 곳, 말씀 좋지, 사랑 많지, 공기 좋지, 인심 후하지.
그런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엔 엄마 오늘 아니면 도저히 시간이 안 되겠는데 거기 더 계실래요? 오늘 모시러 갈까? 엉, 이 밤에? 1시간 반쯤 걸릴 것 같은데. 그래. 너무 오래 있을 수 없고 그럼 오늘 와라. 갈 때도 갑자기 가더니, 올 땐 더 갑작스러워. 사랑만 듬뿍 받고 인사도 못 드리고 도망치듯 떠나와. 너무 죄송한 마음 표현 할 길이 없다. 모두 잠든 밤,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발소리 죽이며, 자동차에 오르자니 어쩐지 꼭 밤도망 치는 듯도 하고, 기분이 영 좀 그렇다.
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들, 그리고 식당 권사님들 너무 큰 사랑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또 찾아뵐 날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건강하세요.
이번 금식은 진실로 목사님들 기도와, 전도사님들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잊지 않고 늘 기도 하겠습니다.